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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전쟁의 기초(The foundations of spiritual warfare) / Jan 25, 2017 운영자 2017-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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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영적전쟁 중에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던 인정하지 않던지 상관없이 이것은 실제이다. 만약 이 중요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우리 신앙의 근거인 성경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성경은 우리 사고와 믿음의 기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성경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이성과 과학중심의 사고가 계몽주의 이후로 서구화된 기독교 신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 안의 성도들은 “영적전쟁”이라는 중요한 패러다임을 잊고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영적전쟁이라는 주제로 여러 번 걸쳐서 글을 써 볼까한다. 오늘은 그 영적전쟁의 가장 기본적인 기초부분을 다루고자 한다. 필자의 견해로는 영적전쟁의 기초에는 세계관과 믿음의 확신 그리고 영적전쟁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본다.

 

 

첫째로,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영적전쟁에 있어서 중요하다.

 

세계관이란 영어로는 worldview로 독일의 철학 용어인 Weltanschauung을 직역한 것이다(Welt = world, Anschauung = view). 간단하게 “자신이 사는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패러다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는 패러다임에 의한 신념(믿음)으로 살아간다. 그러므로 내가 믿고 행동하는 세계관이 어느 세계관이 있지를 구분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보통 세계관은 전통적 세계관, 서구적 세계관(과학/이성주의적), 그리고 성경적 세계관이 있다.

 

① 전통적 세계관은 계몽주의 사상이 생기 전에 모든 세계 사람들이 가졌던 패러다임으로 신, 인간, 영적존재(귀신, 천사, 요정 등)이 함께 거주하면서 산다고 믿는 패러다임이다. 아직 한국에는 서낭당이나, 자신의 지역을 지키는 수호신 내지 악한 신이 애코지 안하도록 만들어놓은 신성한 물건(나무, 돌무더기 등)들이 많이 있는데, 이는 전통적 세계관 때문이다.

 

② 서구적 세계관은 신의 영역과 자연의 영역 사이를 구분하여, 인간의 모든 영역을 이성과 과학적인 사고로 판단하는 세계관을 말한다.

 

③ 성경적 세계관은 성경이 말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믿는 패러다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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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현장 속에서 성경적인 세계관이 아닌 서구적 혹은 전통적 세계관으로 인한 잘못된 사고와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천사를 직접 봤다고 하면, 쉽게 그 사람의 체험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된다. 왜냐하면, 천사가 지금도 우리 삶 속에서 활동한다는 것을 불가능하다는 서구적 세계관의 패러다임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구약이나 신약시대에 실제로 천사들이 활동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천사를 맞이한 아브라함, 천사장 가브리엘의 수태고지를 받은 마리아,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을 탈옥한 사도 베드로 등등,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들에서는 실제로 사람들의 삶 가운데 천사들의 활동이 나온다. 그러나 계몽주의 이후에 등장한 인간의 이성과 과학적 검증된 사고 중심의 패러다임은 성경의 이야기들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온 신학적 대안이 “성경의 정경화” 이후에 모든 기적과 표적(천사의 나타남 포함)은 중단되었다는 “은사 중지론”이었고, 이러한 신학적 뿌리 때문에 성도들은 자연스럽게 서구적 세계관의 패러다임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목회의 현장에서 경험하는 것은 신학이 주는 유익도 있지만, 잘못된 신학적 태도로 우리의 믿음이 왜곡되거나, 변질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신학은 그야말로 성경을 잘 이해하고, 인간들이 가지는 질문들에 대해 답을 주기위한 “도구(Tool)”에 불과하다. 성경만이 진리이며, 신학은 단지 도구 일뿐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신학이 진리인 것처럼 믿음으로 정작 성경을 그대로 믿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가?

 

우스갯소리로 필자는 성도들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서기 397년 카르타고 공회의에서의 성경 정경화 작업이 완료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성경이 완성되었으니, 천사들은 더 이상 성도들 생활에서 활동 하지마’라고 과연 말씀하셨을까?”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목회 현장이었던 에베소 성도들에게 영적전쟁의 실제를 강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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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에베소서 6:11-18).

 

에베소 교회는 영적인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다. 당시 에베소 도시 중심에는 아데미 신전이 있었는데, 그 규모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규모가 4배가 큰 곳으로 현재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로 분류될 만큼 영적 전쟁이 치열한 곳이 이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바울은 2년 동안 두란노 서원을 세워 말씀 사역을 했었고, 수많은 기적과 표적이 나타나므로, 그 도시의 사람들이 마술를 행했던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수많은 책들을 불사르는 일까지 일어났다.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사도행전 19:17-20).

 

한국으로 비교하자면, 용한 점쟁이들과 무당들이 회심하여 자신들이 사용하는 책들을 불태웠다고 볼 수 있다. 에베소에서의 영적 전쟁을 경험했던 성도들에게 당연히 “마귀의 간계를 대적하기 위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라”고 권면하는 것이었다. 또한 삶의 현장은 혈과 육 즉 사람들 관계만이 아니라, “통치자들, 권세들, 어둠의 세상 주관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는 권면으로 너무나 당연한 목회자의 강조였을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우리 삶의 현장 속에서도 필요한 권면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둘째, 믿음의 확신역시 영적전쟁에 중요한 기초이다.

 

믿음의 수준은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정도와 비례한다. 예수님 당시 많은 소경들이 있었지만, 여리고에 사는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눈을 뜨게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지나가자, 소리를 쳐서 불렀다. 주변 사람들의 비아냥과 제지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께 나아가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는 대답과 함께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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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마가복음 10:46-52)

 

성경을 진리로 믿는 믿음,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내 삶 가운데 역사하시고 있다는 믿음, 말씀이 능력이기 때문에 말씀대로 순종하고, 적용하겠다는 믿음, 이러한 믿음이 있어야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셋째로, 영적전쟁에 대한 지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사실 영적전쟁을 무시하거나, 원리나 지식이 없으므로 실패하거나, 여전히 절망 가운데 살고 있는 성도들이 많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 8:1-2)

 

이미 예수님을 통해 구원 받은 성도들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와 사망의 법아래’에서 고통당하고 있다. 심지어 슬프게도 그 고통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믿고 있다. 우리 삶에 있는 고통이나 환란을 만났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나 자신의 잘못이나 인간적인 방법 때문인지, 아니면 마귀가 공격하는 것인지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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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으로 말하자면, 예수님이 오신 목적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주목해보라고 권면하고 싶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 10:9-10)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한일서 1:8하반절)

 

마귀의 일이 무엇인가? 우리 인생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켜려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 삶 가운데 있는 마귀의 일을 멸하고, 우리에게 생명을 더 풍성하게 누리게 하시려고 오신 분이시다. 이러한 예수님의 능력과 이름으로 우리 인생의 여정에서 승리를 확신하며 살아가는 것, 승리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 내가 누리는 승리를 이웃에게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삶. 이러한 삶이 바로 영적전쟁의 패러다임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인 것이다. 

 

 

 

 

출저: 오클랜드 한인 기독교 포털 On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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